1851년 겨울, 런던의 한 화실에는 물을 가득 채운 욕조가 놓였습니다. 그 안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누워 있었습니다. 얼굴과 손만 수면 위로 드러낸 채, 눈을 뜨고 입술을 조금 벌린 자세였습니다. 오늘날 가장 아름다운 죽음의 그림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오필리아〉는, 바로 그 차가운 물속에서 오랜 시간 자세를 견딘 모델 엘리자베스 시달의 몸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오필리아는 화실의 욕조 속에서 다시 한 번 죽음을 연기했다
밀레이는 모델이 물 위에 떠 있는 순간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 욕조 아래에 기름등을 놓고 물을 덥혔습니다. 그러나 작업에 몰두하던 사이 등불이 꺼졌고, 시달은 물이 차가워지는 동안에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병이 난 그녀의 치료비를 둘러싸고 아버지가 항의했고, 밀레이가 비용을 부담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볼 때 우리는 단지 셰익스피어 속 비극의 여주인공만이 아니라, 그 장면을 위해 실제로 몸을 물속에 맡겼던 젊은 여성의 시간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물속에 누운 오필리아의 고요한 얼굴은, 동시에 모델 엘리자베스 시달이 견뎌 낸 시간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직접 보여주지 않았다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햄릿을 사랑했지만 왕과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용당했고, 햄릿의 냉혹한 말과 아버지 폴로니어스의 죽음을 겪은 뒤 끝내 정신이 무너집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꽃을 나누어 주고, 뒤섞인 말 속에 기억과 배신, 후회와 죽음의 뜻을 담아 흘려보냅니다.
극 중 오필리아의 죽음은 무대 위에서 직접 벌어지지 않습니다. 왕비 거트루드가 나중에 들려주는 설명을 통해서만 전해집니다. 냇가로 기울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화환을 걸려다 가지가 부러졌고, 오필리아는 꽃과 함께 물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옷자락이 퍼지며 몸을 잠시 떠받쳤지만, 점차 물을 머금은 드레스가 그녀를 아래로 끌어내렸다고 하지요. 그것이 사고였는지,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 것인지는 끝내 분명하게 말해지지 않습니다.
밀레이가 선택한 순간은 바로 그 모호함이 가장 아름답고도 잔인하게 남아 있는 찰나입니다.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다시 살아 돌아올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이는 순간입니다.
밀레이는 죽음이 막 완성되려는 찰나를 붙잡았다
그림 속 오필리아의 얼굴은 놀랍도록 평온해 보입니다. 눈은 열려 있고, 입술은 방금 노래를 멈춘 사람처럼 살짝 벌어져 있습니다. 두 팔은 몸의 양옆으로 떠 있고 손바닥은 위를 향합니다. 살기 위해 물을 휘젓거나, 주변의 풀과 가지를 붙잡으려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바로 이 고요함 때문에 그림은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때문에 죽음은 더 잔인해집니다. 얼굴 가까이까지 올라온 물과 아래로 무겁게 가라앉는 옷자락을 보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관람자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밀레이는 완전히 가라앉은 뒤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순간, 노래가 끝나기 직전의 짧은 시간을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오필리아〉는 비극을 그린 그림이면서도 묘하게 정적이고, 그 정적이 오히려 오래 남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녀를 둘러싼 꽃과 식물은 모두 말을 걸고 있다
이 그림의 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오필리아는 꽃에 상징을 부여해 사람들에게 건넸고, 밀레이는 그 언어를 화면 속 식물들로 다시 옮겼습니다. 붉은 양귀비는 잠과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데이지는 순결과 무구함을, 제비꽃은 충실함과 젊은 죽음을 암시합니다.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을 뜻하면서 동시에 오필리아가 떨어진 장소를 알려 줍니다.
오필리아의 목 둘레와 손 위, 드레스 곁을 따라 흩어진 꽃들은 화환이면서 동시에 이미 완성된 장례 장식처럼 보입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만졌을 식물들이, 관람자에게는 곧 닥쳐올 죽음을 알리는 표지가 되는 셈입니다.
여름의 강가와 겨울의 모델이 한 화면 안에서 만났다
밀레이는 배경을 먼저 그렸습니다. 그는 영국 서리 지역의 호그스밀강으로 나가 강둑에 자리를 잡고, 수개월 동안 풀과 나무, 물의 표면과 흐름을 집요하게 관찰했습니다. 이 그림의 풍경은 상상 속 덴마크가 아니라, 화가가 실제 영국의 강가에서 본 자연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오필리아의 인물상은 그다음 겨울 런던 화실에서 엘리자베스 시달을 모델로 완성했습니다. 한 장의 그림 안에 여름 강가의 풍경과 겨울 화실의 인물이 겹쳐 있는 셈입니다. 이는 자연을 관습적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눈앞의 세부를 정직하게 관찰하자고 했던 라파엘 전파의 태도를 잘 보여 줍니다. 강둑의 풀, 이끼, 꽃, 나뭇가지 하나까지 대충 처리된 부분이 거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필리아 뒤에는 엘리자베스 시달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이야기는 밀레이와 셰익스피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물속의 얼굴 뒤에는 엘리자베스 시달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녀는 여러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모델이었고, 훗날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연인이자 아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달은 누군가의 뮤즈로만 남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시를 쓰고, 드로잉과 수채화를 제작했으며, 전시에 작품을 출품한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미술사는 그녀의 작품보다 남성 화가들이 그린 그녀의 얼굴을 먼저 기억했습니다. 특히 가장 오래 남은 얼굴이 바로 〈오필리아〉였습니다. 젊은 여성, 병약한 삶, 이른 죽음이라는 요소가 너무 쉽게 겹쳐지면서 사람들은 종종 시달 자신의 삶을 오필리아의 비극과 포개어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시달은 또다시 누군가가 만든 비극 속 인물로 갇히게 됩니다. 그녀는 욕조 속에서 죽어가는 미녀를 연기한 모델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손으로 그림과 시를 남긴 창작자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오필리아〉를 다시 보세요.
물 위에 떠 있는 고요한 얼굴은 셰익스피어가 남긴 비극의 한 장면이면서, 차가운 욕조 속에서 몇 시간씩 자세를 지킨 모델 엘리자베스 시달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밀레이는 죽음이 막 완성되는 가장 아름답고도 잔인한 순간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 뒤에는, 오래도록 누군가의 뮤즈로만 기억되었던 한 여성 예술가의 이름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