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파리 살롱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초상화가 등장했습니다. 모델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금세 누구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녀는 파리 사교계에서 유명했던 비르지니 아멜리 아베뇨 고트로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얼굴도 드레스도 아닌,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작은 끈 하나였습니다.
사전트가 먼저 제안한 야심찬 초상화
고트로는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태어나 프랑스 은행가 피에르 고트로와 결혼한 뒤 파리 사교계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창백한 피부와 대담한 화장, 세련된 옷차림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당대의 유명인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젊은 화가 존 싱어 사전트는 주문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그녀에게 초상화를 그리자고 제안했습니다. 파리에서 이름을 넓혀가던 그에게 고트로의 초상은 자신의 실력을 보여 줄 좋은 기회였습니다. 사전트는 여러 자세와 구도를 오랫동안 연구하며 이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검은 드레스와 창백한 피부, 그리고 흘러내린 어깨끈
완성된 그림에서 고트로는 몸을 비스듬히 틀고 서 있습니다. 피부는 유난히 희고, 얼굴은 관람객을 외면한 채 옆을 향합니다. 한 손은 작은 탁자를 짚고 있지만 표정에는 친절한 미소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사교계 초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통제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1884년 살롱에 처음 공개된 모습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보석 장식이 달린 오른쪽 어깨끈 하나가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있었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당시 관람객에게는 깊게 파인 검은 드레스와 창백한 피부, 대담한 화장과 함께 지나치게 도발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스캔들의 원인은 어깨끈 하나만이 아니었다
전시장에서는 조롱과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고트로와 그녀의 어머니도 당황했고, 그림을 내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전트는 자신이 실제 모습을 그렸을 뿐이라고 맞섰지만, 살롱이 끝난 뒤 결국 흘러내린 어깨끈을 다시 어깨 위로 올려 그렸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작은 의상 사고 하나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고트로는 자신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연출하며 사회적 명성을 얻은 여성이었고, 사전트는 그런 모습을 얌전하게 순화하지 않았습니다. 창백한 피부와 날카로운 옆얼굴, 붉은 귀, 검은 드레스, 고개를 돌린 도도한 자세는 당시 사람들이 기대한 상류층 여성 초상의 규범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결국 관람객이 불편해했던 것은 끈 하나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그림 속 여성이 지나치게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신감 있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게 보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때의 실패작은 사전트의 대표작이 되었다
사건의 후유증은 사전트에게도 컸습니다. 그는 이 일을 훗날 ‘고트로 재앙’이라고 부를 정도였고, 작품을 오랫동안 자신의 작업실에 보관했습니다. 이후 활동의 중심도 파리에서 런던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습니다. 사전트는 1905년부터 다시 이 그림을 전시하기 시작했고, 1916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판매하면서 자신이 그린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과거의 소동을 의식해 모델의 실명을 제목에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비르지니 고트로라는 실존 인물은 제목에서 사라지고, 작품은 지금의 신비로운 이름 〈마담 X〉로 남았습니다. 한때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던 초상화는 오늘날 사전트의 대표작이 되었고, 당시 문제의 중심에 있던 어깨끈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단정하게 어깨 위에 걸려 있습니다.
이제 〈마담 X〉를 다시 보세요.
오른쪽 어깨 위에 얌전히 놓인 검은 끈은 원래 그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작은 선 하나처럼 보이지만, 그 위치 하나에 1884년 파리 살롱의 거대한 소동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