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프랑스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참패했습니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포로가 되었고,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 일부를 새로 만들어진 독일제국에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영토 상실이 아니라 국가적 굴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 뒤, 로렌 출신 화가 쥘 바스티앵 르파주는 같은 땅에서 태어난 잔 다르크를 거대한 화면 위로 다시 불러냈습니다.
갑옷 입은 영웅이 아니라, 정원에 서 있는 평범한 소녀
바스티앵 르파주가 그린 잔 다르크는 전쟁터의 영웅이 아닙니다. 말도 없고, 깃발도 없고, 군인도 없습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회색 옷을 입은 농촌 소녀가 고향 집 정원에 서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잔은 크게 뜬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를 바라보는 듯합니다. 입술은 굳어 있고, 한쪽 팔은 앞으로 뻗어 있습니다. 나무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신을 부르는 힘에 이끌려 한 걸음 나아가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몸은 아직 정원에 남아 있지만 정신은 이미 그곳을 떠난 것처럼 보입니다.
나뭇잎 사이에 스며든 목소리의 형상들
화면 왼쪽을 자세히 보면 정원 사이로 희미한 인물들이 나타납니다. 대천사 미카엘과 성녀 카타리나, 성녀 마르가리타입니다.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선명하지 않고, 나뭇잎과 공기 사이로 번져 나오는 환영처럼 보입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사라질 것 같은 불안정한 존재들입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표현을 두고 논란을 벌였습니다. 정원과 소녀는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그려졌는데, 그 안에 유령 같은 성인들이 함께 떠 있는 모습이 어색하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색함이 이 그림의 핵심입니다. 잔에게만 보였던 존재를 화가는 현실의 공간 속에 억지로 겹쳐 놓았고, 그 결과 관람자도 잔과 비슷한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웅의 시작은 전쟁터가 아니라 결심의 순간이었다
잔 다르크는 15세기 백년전쟁 시기에 등장한 인물입니다. 로렌 지방 돔레미에 살던 농부의 딸 잔은 열두세 살 무렵부터 대천사 미카엘과 성녀들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프랑스를 구하고 왕세자 샤를을 왕위에 올리라는 임무를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잔은 집을 떠나 왕세자를 찾아갔고, 1429년 오를레앙에서 프랑스군에 힘을 보탰습니다. 이후 샤를 7세의 즉위 과정에도 함께하며 프랑스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지만, 결국 부르고뉴군에게 붙잡힌 뒤 영국 측에 넘겨져 1431년 루앙에서 화형당했습니다. 열아홉 살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바스티앵 르파주는 이런 극적인 마지막 장면이나, 말을 타고 군대를 지휘하는 영웅적 순간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정원을 그렸습니다. 왜냐하면 영웅은 완성된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했던 사람이 어떤 부름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보불전쟁 패배 뒤, 프랑스는 잔 다르크를 다시 필요로 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879년의 프랑스는 보불전쟁 패배의 상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프로이센에게 무너진 뒤 프랑스는 영토 일부를 잃었고, 특히 바스티앵 르파주와 잔 다르크의 고향과 연결되는 로렌 지방이 국가적 상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450년 전 프랑스를 구원한 소녀의 이야기는 더 이상 먼 과거의 전설이 아니었습니다.
패전한 프랑스는 잔 다르크를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기억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화가는 그 희망을 이미 완성된 승리의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아직 갑옷도 입지 않았고, 승리도 거두지 않았으며, 단지 고향 정원에 서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어린 소녀로 그렸습니다. 바로 이 점이 그림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패배 이후의 나라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이미 승리한 전설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그림 속 잔은 과거의 인물이면서 동시에 19세기 프랑스가 새롭게 소환한 상징입니다.
이제 〈잔 다르크〉를 다시 보세요.
평범한 농촌 소녀의 몸은 아직 정원에 남아 있지만, 크게 뜬 두 눈은 이미 자신을 기다리는 전쟁터와 운명을 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