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런던, 휘슬러는 작업실에서 새로운 초상화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원래 오기로 했던 모델이 나타나지 않아 함께 살고 있던 어머니 애나 맥닐 휘슬러가 대신 앉았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전해집니다. 다만 그 정확한 경위까지 확실하게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휘슬러가 자신의 어머니를 그렸고, 정작 완성된 작품에는 ‘어머니’라는 말을 제목에 넣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니의 초상이 아니라 ‘회색과 검정의 배열’
당시 애나 휘슬러는 예순일곱 살이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처음에는 서 있는 자세도 생각했지만 오랫동안 서 있기 어려워 결국 의자에 앉았다고 합니다. 검은 옷과 흰 레이스 모자를 쓴 채 옆을 바라보는 지금의 모습은 그렇게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휘슬러는 이 그림에 〈어머니의 초상〉 같은 제목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회색과 검정의 배열 1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인물의 사연보다 검은 드레스와 회색 벽, 흰 모자와 커튼이 화면 안에서 만들어 내는 색과 형태의 관계였습니다.
휘슬러는 다른 작품에도 ‘교향곡’, ‘조화’, ‘야상곡’, ‘배열’처럼 음악에서 가져온 제목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림이 문학적 이야기를 설명하기보다 색과 선, 형태의 조화만으로도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화면 안에는 휘슬러 자신의 그림도 들어 있다
화면은 놀라울 만큼 고요합니다. 어머니는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고, 시선은 화면 밖을 향합니다. 표정에는 극적인 감정이 거의 없습니다. 회색 벽과 검은 옷이 넓은 면을 이루면서 그림 전체가 절제된 리듬을 만듭니다.
벽에는 작은 액자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작품 역시 휘슬러 자신의 판화입니다. 템스강 풍경을 그린 작은 화면은 어머니의 검은 옷과 회색 벽 사이에 또 하나의 직사각형을 만들며 전체 구도에 조용히 끼어듭니다.
커튼의 무늬까지도 하나의 리듬처럼 배치되었다
화면 왼쪽의 검은 커튼은 단순한 배경 장식이 아닙니다. 어두운 천 위에 반복되는 밝은 무늬가 회색 벽과 검은 드레스 사이에 미세한 움직임을 만들어 냅니다. 휘슬러가 제목에서 강조한 ‘배열’이라는 말은 이런 작은 요소까지 포함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결국 ‘휘슬러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대중은 화가의 의도대로 이 작품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긴 공식 제목보다 훨씬 간단한 〈휘슬러의 어머니〉라는 이름이 널리 퍼졌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조용히 앉아 있는 노년 여성의 모습은 시간이 흐르면서 절제와 인내, 그리고 어머니라는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결합했습니다.
휘슬러는 이런 관심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야 모델이 어머니라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중요하지만, 대중이 초상 속 인물의 신원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취지의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이 그림은 어머니의 삶을 설명하는 전기가 아니라, 회색과 검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화면이었습니다.
화가가 지우려 한 이야기가 오히려 작품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1891년 프랑스 정부는 이 작품을 휘슬러에게서 직접 구입했습니다. 이후 뤽상부르 미술관과 루브르를 거쳐 현재는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미국 화가가 그린 가장 유명한 그림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 국가 소장품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휘슬러는 어머니를 그렸지만 사람들이 어머니의 사연을 읽기를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관람객은 그의 의도와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화가가 색과 형태의 관계로 보아 달라고 한 그림에서 사람들은 한 노년 여성의 삶과 어머니라는 기억을 먼저 발견했습니다.
이제 〈회색과 검정의 배열 1번〉을 다시 보세요.
휘슬러에게는 회색과 검정의 조합이었던 한 여성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결국 가장 유명한 ‘어머니’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