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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TORY

이야기로 보는 명화 · 26

이름을 빼앗긴
황금빛 여인

나치는 그림을 빼앗고 유대인 여성의 이름까지 지웠지만, 68년 뒤 한 상속인이 그림을 되찾았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 아델레가 황금빛 장식과 기하학 문양으로 가득한 화면 속에 앉아 있으며, 얼굴과 손만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 Neue Galerie New York · Public Domain

작품 정보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작품명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제작연도
1907
재료
캔버스에 유채, 금·은
크기
약 138 × 138 cm
소장처
미국 뉴욕 노이에 갤러리 (Neue Galerie New York)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했습니다. 빈의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는 오스트리아를 떠났지만, 집과 미술품은 함께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그의 아내 아델레를 그린 클림트의 황금빛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그림은 살아남았지만, 오랫동안 그림 속 여성의 이름은 사라진 채 남았습니다.

그림이 빼앗긴 뒤 ‘아델레’라는 이름도 희미해졌다

블로흐바우어 가문이 소유하던 클림트 작품 다섯 점은 나치에 의해 빼앗겼고,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 역시 이후 오스트리아의 미술관에 들어가게 됩니다. 빈에서 이 작품은 오랫동안 ‘황금의 여인(Woman in Gold)’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노이에 갤러리는 이 명칭이 그림 속 유대인 여성의 정체를 가리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아델레는 이미 1925년에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녀는 유언에서 남편 페르디난트에게 자신의 사후가 아니라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클림트 작품들을 오스트리아 갤러리에 남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소유권은 페르디난트에게 있었고, 이 요청은 훗날 반환 분쟁의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1998년, 오래된 문서가 다시 이야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쟁 뒤에도 작품들은 곧바로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98년 오스트리아에서 나치 시대 미술품의 소유 경위를 다시 조사하는 움직임이 커졌고, 언론인 후베르투스 체르닌이 블로흐바우어 컬렉션의 기록을 추적하면서 오래 묻혀 있던 문서들이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그때 나선 사람이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의 상속인 마리아 알트만이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던 그녀는 이미 고령이었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작품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송은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이어졌습니다.

200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작품의 소유권 자체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알트만이 미국 법원에서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소송을 계속할 수 있다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후 사건은 오스트리아의 중재 절차로 넘어갔고, 2006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을 포함한 클림트 작품 다섯 점을 페르디난트의 상속인들에게 돌려주라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68년 만에 돌아온 그림은 다시 아델레의 이름을 되찾았다

1938년에 빼앗긴 그림이 2006년 가족에게 돌아왔습니다. 같은 해 로널드 로더가 이 작품을 구입했고, 이후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서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제 작품은 다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림을 보면 얼굴과 손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이 황금빛 장식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클림트는 1903년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비잔틴 모자이크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 작품에서도 금과 은, 기하학 문양과 보석 같은 장식을 겹겹이 사용했습니다. 아델레의 몸은 주변 황금빛 공간과 거의 하나가 되지만, 얼굴과 손만은 놀라울 만큼 현실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 부분 확대. 아델레의 얼굴과 다이아몬드 초커, 겹쳐 포갠 손, 금빛과 은빛 장식이 함께 보인다.
부분 확대 · 황금빛 장식 속에서도 아델레의 얼굴과 손은 사실적으로 남아 있고, 겹쳐 포갠 손은 손가락의 형태를 감추는 자세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 보석도 가족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델레의 목에는 화려한 다이아몬드 초커가 걸려 있습니다. 노이에 갤러리의 설명에 따르면 이 목걸이는 남편 페르디난트가 결혼 선물로 준 것이었고, 나치가 블로흐바우어 가문의 재산을 압수한 뒤에는 헤르만 괴링의 소유로 넘어갔습니다.

그림 속 아델레는 그대로였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집과 가족의 재산, 보석이 흩어졌습니다. 심지어 그림은 한동안 그녀의 이름까지 잃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반환은 단순히 값비싼 명화 한 점의 소유권 문제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강제로 끊긴 한 가족의 역사와 이름을 다시 연결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 부분 확대. 드레스와 망토를 채운 금빛 삼각형, 눈 모양, 나선형과 기하학 문양이 촘촘하게 반복된다.
부분 확대 · 눈 모양과 삼각형, 나선과 금속성 장식이 반복되며 아델레의 몸과 황금빛 배경의 경계를 흐린다

‘우먼 인 골드’라는 이름은 결국 영화 제목으로도 돌아왔다

이 반환 이야기는 2015년 영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영화는 마리아 알트만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그림의 반환을 요구했던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한때 아델레의 이름을 가렸던 별칭이,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그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를 알리는 제목이 된 셈입니다.

이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을 다시 보세요.
아델레의 목에는 빼앗긴 다이아몬드 초커가 여전히 빛나고 있고, 금빛 화면 한가운데에는 한때 지워졌던 그녀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림이 돌아온 것은 단지 소유권이 되돌아온 일이 아니라, 아델레라는 이름이 다시 작품 앞으로 돌아온 일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