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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TORY

이야기로 보는 명화 · 04

혹한의 거리에 얼어붙은
어린 영혼들의 진혼곡

매서운 추위 속 물통을 끄는 어린 일꾼들의 고단한 현실

바실리 페로프의 트로이카. 세 아이가 혹한의 거리에서 얼어붙은 물통이 실린 썰매를 끌고 있고, 뒤에서는 어른 한 명이 썰매를 밀고 있다.
Vasily Perov, Troika (Apprentice Workmen Carrying Water), 1866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작품 정보

작가
바실리 페로프 (Vasily Perov, 1833–1882)
작품명
〈트로이카〉 (Troika / Apprentice Workmen Carrying Water)
제작연도
1866
재료
캔버스에 유채
크기
123.5 × 167.5 cm
소장처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 트레차코프 미술관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트로이카’는 원래 세 마리의 말이 끄는 러시아의 전통 마차나 썰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눈 덮인 들판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그 장면은 보통 속도와 활기, 때로는 축제의 정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바실리 페로프는 그 이름을 정반대의 장면에 붙였습니다. 말 대신 세 명의 아이가 얼어붙은 거리를 힘겹게 끌고 가는 썰매. 이 아이러니만으로도 그림의 뜻은 이미 절반쯤 드러납니다.

1861년 농노 해방 이후에도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도시의 빈민과 하층 노동자들은 여전히 불안정한 일에 매여 있었고, 아이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수공업자의 견습공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어른도 버거워할 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트로이카〉는 바로 그런 시대의 차가운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세 마리의 말 대신 세 명의 아이

그림을 보면 눈보라가 부는 겨울 거리에서 세 아이가 한 줄로 몸을 낮춘 채 썰매를 끌고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가장 작은 몸으로 보이는 소년이 정면을 향해 버티고 있고, 왼쪽 아이는 거의 쓰러질 듯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앞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소녀 역시 두 손을 모아 줄을 붙든 채 이를 악물고 걷습니다.

썰매 위에는 커다란 물통이 실려 있습니다. 통 바깥으로 흘러내린 물은 혹한 속에서 곧바로 얼어붙어 하얀 고드름처럼 늘어져 있습니다. 그 모습만으로도 이 노동이 얼마나 춥고 무거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뒤에서는 어른 한 사람이 온몸으로 썰매를 밀고 있지만, 그 도움조차 이 짐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아이들의 몸은 모두 앞으로 기울어 있다

이 그림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아이들이 모두 아직 성장기의 몸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세 아이는 제 몸에 맞지 않는 크고 낡은 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옷은 바람을 완전히 막아주지 못하고, 신발 역시 겨울 거리를 견디기에는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아이들은 단순히 추운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무게를 온몸으로 끌어당기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몸은 전부 앞쪽으로 쏠려 있고, 어깨는 움츠러들어 있습니다. 얼굴에는 투정이나 울음보다 더 지친 표정이 남아 있습니다. 이미 힘든 일을 오래 반복해온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익숙한 피로가 어린 얼굴에 먼저 깃들어 있습니다.

트로이카의 부분 확대. 중심의 세 아이 얼굴과 상체가 보이며, 아이들은 바람을 맞으며 썰매 줄을 붙잡고 있다.
부분 확대 · 바람을 정면으로 견디는 세 아이의 얼굴

작은 개 한 마리와 뒤에서 미는 어른

화면 아래를 달리는 개 한 마리는 얼핏 장면에 생동감을 더하는 요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동물의 존재는 오히려 거리의 현실을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개는 자유롭게 뛰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전혀 자유롭지 않습니다. 같은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으면서도 누가 짐을 끌고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썰매 뒤에서 미는 어른 역시 중요합니다. 그는 얼굴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은 채 바람과 무게를 견디며 몸을 밀어 넣고 있습니다. 이 인물이 아이들을 돕는 사람인지, 같은 노동의 굴레 안에 묶인 또 다른 노동자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의 힘만으로는 이 짐을 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화가

페로프는 러시아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혼외자로 태어나 오랫동안 아버지의 성과 신분을 온전히 가질 수 없었습니다. ‘페로프’라는 이름도 어린 시절 글쓰기 선생이, 펜을 잘 다룬다며 붙여준 별명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그림이 일찍부터 서민과 약자의 현실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이유를 이 한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페로프가 가난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처지를 외면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성직자와 사회 제도의 위선을 풍자하는 작품들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동시에 아이와 노동자, 농민의 삶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그림을 남겼습니다.

〈트로이카〉는 그런 시선이 가장 서늘하고 또 절절하게 드러난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에는 영웅도, 낭만적인 위로도 없습니다. 다만 너무 어린 몸이 너무 무거운 짐을 끌고 있는 장면이 있을 뿐입니다.

중앙 소년 바샤에 얽힌 일화

이 그림에는 오래전부터 널리 전해지는 한 일화가 있습니다. 페로프가 양옆의 아이들 모델은 비교적 쉽게 구했지만, 화면 중앙을 맡길 소년의 얼굴은 한동안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거리에서 가난한 여인과 어린 아들을 만나게 되었고, 바로 그 아이에게서 자신이 찾던 표정을 보았다고 합니다.

소년의 이름은 바샤였다고 전해집니다. 훗날 어머니가 다시 화가를 찾아와 아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고, 이미 미술관에 걸린 그림 속 아들의 얼굴을 보고 통곡했다는 이야기 역시 함께 따라옵니다. 이 일화의 세부를 모두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오랫동안 〈트로이카〉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다시 보면 화면 한가운데 선 소년의 얼굴이 더욱 오래 남습니다. 그는 사회 문제를 상징하는 익명의 인물이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의 실제 아들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불러옵니다. 한 시대의 비극이 추상적인 통계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한 아이의 얼굴로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혹한의 풍경이 아니라 어린 영혼들의 진혼곡

〈트로이카〉는 단순한 겨울 풍경이 아닙니다. 이 그림은 아이들을 말처럼 부려야 했던 사회의 무심함을 고발합니다. 동시에 추위와 피로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어린 생명의 맑음과 존엄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화면 전체는 희고 탁한 겨울빛에 잠겨 있지만, 그 한가운데 선 세 아이의 얼굴은 또렷합니다. 눈보라와 얼음, 축축한 거리, 무거운 물통보다 먼저 보이는 것은 결국 그 아이들의 몸과 표정입니다. 페로프는 거대한 사회문제를 거창한 상징으로 돌려 말하지 않고, 한 장면으로 곧바로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트로이카〉를 다시 한번 보세요.
세 마리 말의 힘을 뜻하던 제목 아래,
실제로 줄을 메고 있는 것은 세 명의 아이들입니다.

저 어린 얼굴들은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외면해 온 시대의 책임을 조용히 되묻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