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 강은 넓고 고요합니다. 하늘은 맑고 물빛은 부드럽게 반짝입니다. 그런데 그 평화로운 풍경 한가운데를 열한 명의 남자가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천천히 지나갑니다. 어깨와 가슴에는 두꺼운 가죽끈이 걸려 있고, 그 끈은 강 위의 거대한 배로 이어집니다. 일리야 레핀의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은 아름다운 풍경과 고된 노동을 한 화면에 놓으며, 그 차이를 피할 수 없게 만듭니다.
당시 러시아에서 이런 노동자를 ‘부를라크’라고 불렀습니다. 큰물이 드는 계절이면 강둑을 따라 걸으며 선박을 끌어올리는 임금 노동자들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이미 증기선이 널리 쓰이고 있었지만 이런 노동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계가 등장한 시대와 사람의 몸이 가장 값싼 동력으로 남아 있던 시대가 한동안 겹쳐 있었던 것입니다.
레핀은 먼저 네바 강에서 이 장면을 보았다
국립 러시아 미술관의 기록에 따르면 레핀은 186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에서 처음 부를라크들을 보았습니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강변을 산책하는 옆으로,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몸에 끈을 매고 배를 끌고 지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대비가 젊은 화가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레핀은 두 차례 볼가 강으로 내려가 실제 부를라크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여러 사람을 스케치했습니다. 그래서 화면 속 열한 명은 단순히 ‘가난한 노동자들’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저마다 얼굴과 체격, 자세, 성격이 다르고, 실제 모델을 바탕으로 한 인물들입니다.
한 줄로 묶여 있지만 모두 다른 사람들
전체 장면을 보면 이들은 하나의 무리처럼 보입니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걷고, 같은 밧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가까이 보면 표정과 자세가 전혀 다릅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앞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몸을 거의 늘어뜨린 채 따라갑니다.
레핀은 이들을 불쌍함만을 강조한 익명의 군중으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볼가 강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전직 성직자, 선원, 병사, 농민 등 서로 다른 삶을 지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같은 가죽끈 아래 묶였지만, 각자의 삶이 얼굴에 남아 있습니다.
맨 앞의 카닌, 체념보다 품위가 먼저 보이는 얼굴
맨 앞에서 무리를 이끄는 수염 난 인물은 카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한때 성직자였던 사람으로 전해지며, 레핀은 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화가는 회고에서 카닌의 눈과 넓은 이마, 그리고 누더기 차림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품위를 특별히 기억했습니다.
카닌의 몸은 분명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단순한 체념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침착함이 있습니다. 바로 옆의 인물들 역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노동을 견디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고개를 곧추세우고, 다른 사람은 이를 악문 채 시선을 앞으로 둡니다. 레핀이 보여주려 한 것은 ‘불쌍한 사람들’이라기보다, 무거운 삶을 짊어진 채 여전히 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얼굴들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화면 한가운데의 젊은 라르카
무리 한가운데에는 상대적으로 젊고 밝은 옷을 입은 소년 라르카가 보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몸을 완전히 숙이지 않고, 어깨에 걸린 끈을 고쳐 매듯 팔을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햇빛도 유난히 그 주변에 밝게 머뭅니다.
후대의 해설에서는 이 인물을 낡은 질서에 완전히 순응하지 않는 젊은 세대의 상징으로 읽기도 합니다. 다만 그것을 레핀의 명확한 선언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림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모두가 같은 줄을 끌고 있는 가운데 이 소년만은 잠시 몸을 펴고 끈을 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작은 동작 하나가 화면 전체에 미묘한 긴장을 만듭니다.
기계의 시대가 왔지만 사람의 몸은 남아 있었다
이 작품이 1873년 빈 만국박람회에 소개되었을 때, 러시아의 교통 당국자는 이미 증기선이 널리 쓰이는 시대에 이런 낡은 운송 방식을 해외에 보여주는 것을 불편해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반응 자체가 오히려 그림의 핵심을 잘 드러냅니다.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낡은 노동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기계가 등장한 뒤에도 가장 값싸고 쉽게 소모할 수 있는 동력으로 사람의 몸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레핀의 그림은 바로 그 어긋난 시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화면 뒤의 평화로운 강과 멀리 보이는 배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같은 시대 안에서 서로 다른 삶의 속도가 함께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을 산 사람은 황제의 아들이었다
이 작품에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이 그림을 구입한 사람은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아들,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었습니다. 작품은 오랫동안 그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전 당구실에 걸려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사회의 낮은 곳을 그린 그림이 제국 최상층의 공간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묘한 아이러니를 남깁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그림이 단순한 선동화가 아니라 인물과 풍경, 구성 자체로 강한 예술적 설득력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873년 빈 만국박람회에서도 작품은 큰 주목을 받았고, 레핀은 이 그림을 통해 유럽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레핀은 끝까지 ‘사람’을 그렸다
레핀은 지방의 군사 정착민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그림으로 생계를 익혔고, 이후 제국 미술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출발이 화려했던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농민과 노동자의 삶을 쉽게 지나치지 않았던 배경에는 이런 성장 경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말년에는 오른손의 기능이 크게 약해져 왼손으로 다시 그림을 익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집요함을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의 인물들과 직접 연결할 수는 없지만, 레핀이 사람의 몸과 표정에 얼마나 오래 매달렸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불쌍함보다 오래 남는 것은 각자의 눈빛이다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은 분명 가혹한 노동을 고발하는 그림입니다. 그러나 그 힘은 단순히 비참함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열한 명의 인물은 모두 다른 얼굴과 태도로 같은 무게를 견딥니다. 어떤 사람은 체념했고, 어떤 사람은 경계하고, 어떤 사람은 아직 저항할 여지를 남겨둔 듯 보입니다.
레핀은 이들을 짐승처럼 부려지는 노동자로 그렸지만, 정작 화면 속 사람들의 인간다움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친 옷과 굽은 자세, 굳은 손과 눈빛 속에서 각자의 존엄이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제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을 다시 한번 보세요.
같은 줄에 묶여 걷고 있지만, 그들의 눈빛은 모두 다릅니다.
무거운 끈 아래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존엄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