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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TORY

이야기로 보는 명화 · 06

화려함 뒤에 방치된 현대인의
고립과 알코올 중독

녹색 요정이라 불린 술 앞에 앉은 두 사람의 조용한 추락

에드가 드가의 압생트. 카페의 한 테이블에 여인과 남자가 나란히 앉아 있고, 여인 앞에는 옅은 초록빛 술잔이 놓여 있다.
Edgar Degas, Dans un café (L’Absinthe), 1875–1876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작품 정보

작가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1834–1917)
작품명
〈압생트〉 (L’Absinthe / Dans un café)
제작연도
1875–1876
재료
캔버스에 유채
크기
92 × 68.5 cm
소장처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Paris)

압생트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강한 술이었습니다. 쓴쑥과 아니스, 회향을 넣어 만들었고, 물을 타면 연한 초록빛이 뿌옇게 번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술을 낭만적으로 ‘녹색 요정’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별명 뒤에는 중독과 타락, 환각에 대한 불안도 함께 따라다녔습니다. 드가의 〈압생트〉는 바로 그 복잡한 시대 감각을 작은 술잔 하나에 응축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원래 제목은 ‘압생트’가 아니었다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압생트〉가 아니라 〈카페에서〉(Dans un café)였습니다. 즉, 처음부터 알코올 중독을 정면에 내세운 그림이라기보다, 카페라는 근대적 공간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장면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은 여인 앞에 놓인 옅은 초록빛 술잔에 시선을 고정했고, 결국 이 작품을 그냥 〈압생트〉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바뀌자 그림의 인상도 달라졌습니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평범한 카페의 풍경은 어느새 중독과 무기력의 상징처럼 읽히기 시작했고, 관객들은 그 술잔을 중심으로 화면 전체를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잔 하나가 그림의 운명을 바꾼 셈입니다.

같이 앉아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두 사람

여자는 화면 한복판에 힘없이 앉아 있습니다. 어깨는 아래로 처졌고, 시선은 정면을 향하지만 아무것도 또렷하게 보지 않는 듯합니다. 남자는 파이프를 문 채 옆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둘은 같은 테이블에 나란히 붙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전혀 닿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 어색한 거리감이 바로 그림의 핵심입니다. 드가는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장면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을 그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만듭니다. 바로 옆자리에 누군가가 있어도 고독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가는 차갑게 보여줍니다.

작은 압생트 잔이 그림 전체를 지배한다

여인 앞에 놓인 술잔은 아주 작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그 잔입니다. 물을 타 반투명하게 흐려진 연녹색 액체는 화려한 장식도 없는데 이상할 만큼 강한 존재감을 가집니다. 마치 여인의 하루와 감정, 그리고 점점 비어가는 내면이 모두 저 작은 잔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압생트의 부분 확대. 여인의 옆과 남성 앞 테이블 사이에 물을 탄 연녹색 압생트 잔이 놓여 있다.
부분 확대 · 조용하지만 가장 강하게 보이는 압생트 잔

그래서 이 술잔은 단순한 소품이 아닙니다. 당시 파리의 낭만과 보헤미안 감수성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안으로 가라앉는 인간의 고립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녹색 요정’이라는 별명은 아름답지만, 드가의 화면 속에서 그 요정은 누구도 구해주지 않습니다.

카페라는 근대 도시의 무대

이 장면의 배경은 파리 피갈 광장 근처의 카페 ‘라 누벨 아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당시 화가와 시인, 비평가들이 모이던 예술가들의 아지트였습니다. 하지만 드가는 카페의 활기나 대화의 열기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오가던 공간에서, 그는 오히려 말없는 두 사람을 골라 화면의 중심에 앉혔습니다.

또한 이 그림은 우연히 스쳐 본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치밀하게 구성된 화면입니다. 비스듬히 잘려 들어온 테이블, 살짝 밀린 구도, 남자의 일부가 화면 밖으로 밀려난 듯한 프레이밍은 마치 순간 사진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비뚤어진 시선까지도 드가가 계산해 만든 효과였습니다.

관람자는 그림 밖 안전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아 두 사람을 훔쳐보는 손님처럼 끌려 들어갑니다. 이 장면을 가까이서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래서 더 불편합니다.

모델은 실제 술꾼이 아니었다

그림 속 여자의 모델은 배우이자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하던 엘렌 앙드레(Ellen Andrée)였습니다. 남자는 화가이자 판화가인 마르슬랭 데부탱(Marcellin Desboutin)이었습니다. 즉, 이 둘은 카페에서 우연히 포착된 사람들이 아니라, 드가의 요청에 따라 장면을 연기한 모델들이었습니다.

압생트의 부분 확대. 힘없이 앉은 여자와 옆을 바라보는 남자가 같은 벤치에 앉아 있으나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분위기를 보여준다.
부분 확대 · 같은 자리에 있지만 서로 닿지 못하는 두 사람

그런데 작품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그림 속 인물들을 진짜 타락한 술꾼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여인에게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낙인이 쉽게 따라붙었습니다. 드가는 사회의 한 장면을 그렸는데, 관객들은 사회를 보기보다 모델 개인의 도덕성을 먼저 판단했던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불편해했을까

1876년과 1893년 런던 전시에서 이 그림은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떤 관객들은 이 작품을 도덕적으로 불쾌하다고 보았고, 어떤 이들은 프랑스 도시 문명의 퇴폐를 보여주는 증거처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술 자체보다도, 저토록 가까이에 있는 고독의 표정이었는지 모릅니다.

드가는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빛나는 도시 파리의 카페 안에서도 사람은 충분히 무너질 수 있고, 함께 앉아 있어도 서로의 동행자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화려한 근대성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조용한 붕괴. 그것이 이 그림이 지금까지도 서늘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도시의 외로움은 이렇게 조용히 보인다

〈압생트〉는 술의 위험성만을 말하는 그림으로 좁게 읽기에는 훨씬 더 복잡한 작품입니다. 여기에는 근대 도시의 익명성, 사람 사이의 단절, 여성을 향한 편견, 그리고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붙잡는 작은 위안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압생트 한 잔은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매개일 뿐입니다.

이제 〈압생트〉를 다시 보세요.
여인 앞의 옅은 초록빛 잔은 마지막 위안일까요,
아니면 천천히 사람을 비워가는 조용한 입구일까요.

그리고 그 옆의 남자는 동행자일까요.
아니면 같은 외로움을 앓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고통을 알아보지 못하는 또 다른 현대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