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1808년 5월 3일〉은 전쟁을 영웅적으로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승리의 환호 대신 처형 직전의 공포를, 이름난 장군 대신 총구 앞에 선 평범한 시민을 중심에 놓은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오래전 스페인의 역사화이면서도, 동시에 지금까지 반복되는 폭력의 장면처럼 다가옵니다.
하루 전의 저항, 하루 뒤의 처형
사건은 1808년 5월 2일에 시작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스페인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고, 마드리드 시민들은 왕실 인물들이 프랑스로 끌려간다는 소식에 분노했습니다. 사람들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프랑스군에 맞섰습니다.
고야는 이 하루 전의 장면을 따로 그렸습니다. 바로 〈1808년 5월 2일〉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시민들이 말 탄 프랑스군에게 달려들며, 거리 전체가 몸싸움과 피와 분노로 뒤엉켜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저항은 곧바로 보복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프랑스군은 봉기에 참여했거나 참여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아들여 총살했습니다. 재판다운 재판도, 변명의 기회도 거의 없었습니다. 고야가 1814년에 이 사건을 다시 꺼낸 것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그가 지나온 어두운 시대를 증언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루 전 거리에서 저항하던 시민들이, 하루 뒤에는 총구 앞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얼굴 없는 총살대와 얼굴을 가진 희생자들
그림 오른쪽에는 프랑스군 총살대가 서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군인들은 모두 비슷한 자세로 몸을 숙인 채, 같은 방향으로 총을 겨눕니다. 사람이라기보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장치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총구 앞에 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과 몸짓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얼굴을 감싸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는 이미 쓰러졌습니다. 고야는 죽이는 사람의 얼굴은 지우고,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은 남겼습니다. 그 차이가 이 그림의 핵심입니다.
화면 한가운데의 흰 셔츠를 입은 남자는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습니다. 처음에는 항복하는 자세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손바닥의 붉은 흔적 때문에 그런 인상은 더욱 강해집니다. 하지만 그는 초월적인 성인이라기보다, 죽고 싶지 않은 평범한 인간으로 보입니다. 두 눈은 크게 떠 있고, 얼굴에는 공포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야가 보여준 것은 영웅의 장엄한 최후가 아닙니다. 끝까지 살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더 비극적이고, 더 잔인합니다.
등불이 비추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처형
그림 바닥에는 등불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이 작은 빛은 장면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입니다. 보통 그림 속 빛은 구원이나 계시를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서 등불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빛이 아닙니다. 오히려 총살대가 더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도록, 희생자를 환하게 드러내는 처형장의 조명처럼 기능합니다.
이 그림은 한순간을 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여러 시간대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발밑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 있고, 중앙에는 지금 죽을 사람이 서 있으며, 뒤쪽에는 곧 자기 차례가 올 것을 아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의 순서가 한 장면 안에 겹쳐 있는 셈입니다. 총소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화면 속에서 계속 반복될 것처럼 느껴집니다.
전쟁을 겪고 또다시 전쟁을 겪은 그림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은 한 쌍의 작품입니다. 하나는 봉기이고, 하나는 보복입니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은 훗날 스페인 내전 중 프라도 미술관의 소장품 피난 과정에서 다시 손상을 입었습니다. 전쟁을 그린 그림이, 또 다른 전쟁을 지나며 상처를 입은 셈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지 1808년의 사건만 품고 있지 않습니다. 1814년 고야가 다시 바라본 기억, 이후 스페인 역사 속에서 반복된 폭력,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까지 떠올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학살의 장면까지 함께 불러냅니다.
이제 〈1808년 5월 3일〉을 다시 보세요.
흰 셔츠의 남자는 정말 항복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총구 앞의 사람일까요,
아니면 얼굴 없는 총살대의 침묵일까요.
고야가 남긴 것은 전쟁의 영광이 아니라,
전쟁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가는지에 대한 목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