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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TORY

이야기로 보는 명화 · 10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없는 소녀

단돈 2길더에 팔린 이름 없는 소녀가, 350년 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이 되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푸른 터번을 두른 젊은 소녀가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려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Johannes Vermeer, Girl with a Pearl Earring, c. 1665 · Mauritshuis, The Hague

작품 정보

작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 1632–1675)
작품명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 Meisje met de parel)
제작연도
약 1665년
재료
캔버스에 유채
크기
44.5 × 39 cm
소장처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1881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경매장에 낡고 어두운 그림 한 점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 가운데 하나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단돈 2길더, 수수료까지 합쳐 2길더 30센트에 팔렸습니다. 그 그림이 바로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였습니다.

2길더에 팔린 그림

경매장에서 그림을 눈여겨본 사람은 문화 행정가 빅토르 더 스튀르스와 수집가 아르놀뒤스 안드리스 데스 톰베였습니다. 작품은 너무 더럽고 상태가 좋지 않아 처음에는 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고 전해집니다. 더 스튀르스가 페르메이르의 작품일 가능성을 알아보고 친구 데스 톰베와 경쟁 입찰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데스 톰베는 2길더에 낙찰받고 수수료 30센트를 더해 그림을 가져갔습니다. 이후 작품은 정리와 보존을 거치며 페르메이르의 서명 ‘IVMeer’도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더 스튀르스가 작가를 확신했는지, 청소 뒤 서명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확인되었는지는 전승에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데스 톰베는 후손 없이 세상을 떠났고, 1902년 자신의 소장품을 마우리츠하위스에 유증했습니다. 미술관은 이 그림을 직접 사지 않고도 훗날 값을 매길 수 없는 대표작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아직도 모른다

이 그림을 둘러싼 가장 큰 수수께끼는 단순합니다. 소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화가의 딸이라는 추측도, 집안의 하녀나 후원자 가족이라는 상상도 있었지만 이를 증명하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원래 특정 인물의 신분과 얼굴을 기록하는 정식 초상화라기보다 ‘트로니(tronie)’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트로니는 특정한 이름을 남기는 초상보다, 표정과 얼굴형, 이국적인 의상, 빛의 효과를 탐구하는 인물 연구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소녀의 이름도, 나이도, 페르메이르와의 관계도 알지 못합니다.

1999년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 빈자리에 ‘그리트’라는 하녀의 이야기를 만들어 넣었습니다. 소설과 영화가 크게 성공하면서 그리트를 실제 모델처럼 기억하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그 인물은 소설가가 창조한 인물입니다.

고개를 돌린 아주 짧은 순간

소녀는 어깨를 옆으로 돌린 채 우리를 바라봅니다. 누군가 뒤에서 이름을 부르자 막 고개를 돌린 것처럼 보입니다.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고, 표정은 웃음도 두려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바로 이 모호함 때문에 그림은 오래 살아남습니다. 페르메이르는 소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말이 시작되기 직전, 혹은 막 끝난 직후 같은 짧은 순간을 남겼습니다. 관람자는 그림을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금 그녀를 불러 세운 사람처럼 느끼게 됩니다.

금보다 귀했던 푸른색

머리를 감싼 푸른 천은 당시 네덜란드 소녀의 평범한 일상복이 아닙니다. 이국적인 터번은 소녀를 특정한 가정과 계층에서 떼어내고, 현실과 조금 떨어진 인물처럼 보이게 합니다.

페르메이르는 이 푸른색을 위해 천연 울트라마린을 넉넉하게 사용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산출된 청금석으로 만든 울트라마린은 당시 가장 비싼 안료였고, 금보다 비싼 재료로 기록될 만큼 귀했습니다. 이름도 남지 않은 소녀의 머리에 페르메이르는 가장 값비싼 색을 올린 셈입니다.

진주는 사실 몇 번의 흰 붓질이다

그림 제목의 주인공인 진주 역시 자세히 보면 놀랍습니다. 둥근 형태를 정교하게 묘사한 것도 아니고, 귀에 매달린 고리조차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밝고 어두운 흰색 붓질 몇 번이 있을 뿐인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커다란 진주를 봅니다.

마우리츠하위스의 연구는 이 귀걸이가 실제 천연 진주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크며, 모조 장신구였을 가능성을 설명합니다. 결국 페르메이르가 그린 것은 진주의 단단한 형태보다 그 표면에 맺힌 빛에 가까웠습니다. 몇 번의 붓질만으로 관람자의 눈이 나머지를 완성하게 만든 것입니다.

검은 배경 뒤에는 녹색 커튼이 있었다

오랫동안 그림의 배경은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정밀 조사에서는 소녀 뒤에 원래 짙은 녹색 커튼이 있었던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오른쪽 위에는 접힌 천을 암시하는 사선과 색의 변화가 남아 있었고, 시간이 흐르며 녹색 안료가 변색되어 지금처럼 어둡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았던 속눈썹도 과학 조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귀의 위치와 머리수건의 윗부분, 목 뒤 윤곽을 조금씩 수정한 흔적도 확인되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완벽해 보이는 소녀의 얼굴도, 실제로는 화가가 계속 고치고 다듬으며 완성한 결과였습니다.

1994년 보존 처리에서는 오래된 니스와 변색된 덧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입가의 작은 분홍빛 하이라이트도 다시 드러났습니다. 아주 작은 점이지만, 그 때문에 입술은 막 움직일 것처럼 살아납니다.

페르메이르의 빈자리가 만든 또 하나의 이야기

페르메이르는 남아 있는 작품이 매우 적고 생애 기록도 많지 않습니다. 그 빈틈은 20세기에 뜻밖의 사건을 낳았습니다. 네덜란드 화가 한 판 메이헤런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페르메이르’를 만들어 전문가와 미술관을 속였습니다.

그의 위작 〈엠마오의 저녁 식사〉는 한때 진짜 페르메이르로 인정받아 미술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또 다른 가짜 페르메이르는 나치의 헤르만 괴링에게 팔렸습니다. 전쟁 뒤 문화재를 적에게 넘긴 혐의를 받자 그는 자신이 위조자였다고 고백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감시 아래 다시 페르메이르풍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사건은 전문가들의 실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당시 사람들이 페르메이르를 얼마나 신비로운 화가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작품도 기록도 적었기 때문에, 어디선가 새로운 걸작이 나타날 수 있다는 믿음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모델의 이름도 모르고,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검은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곳에는 녹색 커튼이 숨어 있었고, 커다란 진주는 몇 번의 흰 붓질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야기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후대 사람들이 채운 상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불확실함이 그림의 힘을 줄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화가도 모델도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고개를 돌린 짧은 순간만은 35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다시 보세요.
단돈 2길더에 팔렸던 이름 없는 소녀가
지금은 세상의 모든 관람객과 눈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누구인지 끝내 모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도 그녀가 먼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