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9년 쿠바 아바나 항구에서 열네 살 소년 브룩 왓슨이 상어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상어는 그를 물속으로 끌고 갔고, 다시 떠오른 소년을 두 번째로 공격해 오른쪽 다리를 무릎 아래까지 잃게 했습니다. 배에 있던 선원 아홉 명이 보트를 내려 달려갔고, 세 번째 공격이 이어지기 직전 가까스로 소년을 건져냈습니다. 코플리의 〈왓슨과 상어〉는 바로 그 몇 초를 그린 작품입니다.
29년 뒤, 성공한 상인이 다시 꺼낸 가장 무력했던 순간
사고가 일어난 지 29년이 지난 1778년, 성공한 상인이 된 왓슨은 존 싱글턴 코플리에게 그날의 구조 장면을 그려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값비싼 옷과 재산을 보여주는 초상 대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바다에서 죽음과 맞서던 열네 살의 자신을 남기기로 한 것입니다.
미국 국립미술관은 왓슨이 자신의 이야기를 개인적인 용기와 영웅적 생존의 교훈으로 적극 알렸다고 설명합니다. 그림도 구조가 끝난 안도의 순간이 아니라,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가장 위태로운 순간을 택했습니다. 소년의 손과 구조자의 손은 아직 닿지 않았고, 상어는 다시 다가오고 있습니다.
살고 싶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년
화면 아래의 왓슨은 등을 물에 댄 채 떠 있습니다. 입은 벌어져 있고 한쪽 팔을 높이 뻗었지만, 손끝은 아직 배에 닿지 않습니다. 이미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친 상태이고 물속에서는 상어가 다시 돌아옵니다. 이 순간 그의 생명은 자신의 용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코플리는 살아 있는 상어를 직접 관찰할 기회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림 속 상어는 오늘날 보기에 해부학적으로 조금 낯설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어색함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죽음의 속도입니다. 정확한 상어 그림이라기보다 공포 그 자체에 가깝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움직이는 아홉 사람
작은 보트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른 동작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노를 젓고, 누군가는 배 밖으로 몸을 내밀어 왓슨에게 손을 뻗습니다. 나이 든 선원은 동료의 옷을 붙잡아 그까지 물에 빠지지 않도록 버티고, 오른쪽의 젊은 선원은 긴 작살을 들어 상어를 막으려 합니다.
이 그림의 긴장감은 상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보트 안에서 서로의 몸을 붙잡고 한 사람을 끌어올리려는 손들이 화면 전체를 움직입니다. 왓슨은 가장 아래에 있고, 구조하는 사람들의 몸은 위쪽에서 하나의 커다란 삼각형처럼 모입니다.
화면 가장 높은 곳에 선 흑인 선원
그중에서도 중앙 위쪽의 흑인 선원은 강한 존재감을 가집니다. 그는 구조 장면의 꼭대기에 서서 밧줄을 붙잡고 물속을 바라봅니다. 미국 국립미술관은 18세기 유럽 회화에서 흑인 인물을 이처럼 중심적이고 영웅적인 위치에 둔 것이 이례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장면의 배경이 아바나 항구라는 사실도 그냥 지나가기 어렵습니다. 당시 아바나는 대서양 노예무역의 주요 항구 중 하나였습니다. 그림 속 흑인 선원의 구체적인 신분이나 실제 구조자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오늘의 관람자는 이 인물이 한 백인 소년의 생명을 구하는 장면과 당시 노예제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구조받은 사람은 훗날 노예무역 폐지에 반대했다
이 그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왓슨의 훗날입니다. 그는 상인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런던 시장과 영국 의회 의원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1788년 영국 의회에서 노예무역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립미술관의 해설에 따르면 왓슨은 노예무역이 사라질 경우 서인도제도에서 자신이 팔던 낮은 등급의 생선 시장이 타격을 받을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 생선은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의 식량으로 판매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난 사람이, 수십 년 뒤에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보다 자신의 사업을 먼저 계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코플리가 1778년 이 그림을 통해 훗날의 일을 예언했다거나, 작품 전체를 노예무역 비판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사실을 알고 그림을 바라보면, 화면 속 구조의 손길에는 피하기 어려운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그가 남기고 싶었던 교훈과 그림이 남긴 교훈
왓슨은 1803년 유언을 통해 이 작품을 어린 시절 도움을 받았던 크라이스트 병원 학교에 기증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구조와 성공담이 젊은이들에게 교훈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그림 앞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공한 정치가 왓슨이 아니라, 물속의 아이를 향해 손을 뻗는 이름 없는 사람들입니다. 왓슨은 화면에서 가장 무력합니다. 실제로 이 장면을 움직이는 힘은 다른 사람들의 손과 노, 밧줄과 작살입니다.
그래서 〈왓슨과 상어〉는 한 사람의 용기만을 기념하는 그림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살아남는 데 얼마나 많은 타인의 행동이 필요한지, 그리고 구조받은 사람이 그 경험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 〈왓슨과 상어〉를 다시 보세요.
물속의 왓슨은 살기 위해 손을 뻗고 있습니다.
배 위의 사람들은 자신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손을 잡으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훗날도 알고 있습니다.
구조받았던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의 자유 앞에서는 같은 손을 내밀지 못했을까요.
어쩌면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제목에 이름이 남은 왓슨이 아니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몸을 움직인 이름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