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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TORY

이야기로 보는 명화 · 28

비너스는 괜찮았지만
올랭피아는 안 됐다

벌거벗은 여신에는 박수를 보내던 파리 사람들이, 자신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현실의 여성 앞에서는 분노했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흰 침대 위에 벌거벗은 여성이 누워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뒤에는 꽃다발을 든 흑인 하녀와 침대 끝의 검은 고양이가 보인다.
Édouard Manet, Olympia, 1863 · Musée d’Orsay, Paris

작품 정보

작가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1832–1883)
작품명
〈올랭피아〉 (Olympia)
제작연도
1863
재료
캔버스에 유채
크기
130.5 × 191 cm
소장처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1865년 파리 살롱에 벌거벗은 여성의 그림 한 점이 걸렸습니다. 누드화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살롱에는 비너스와 여신들의 나체가 수없이 등장했고, 불과 2년 전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마네의 〈올랭피아〉 앞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누드’ 자체가 아니었다

마네가 그린 여성은 신화 속 여신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파리에서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코르티잔(courtesan)의 모습으로 읽히는 현실적인 여성이었습니다. 고대 신화라는 안전한 포장이 사라지자 같은 누드가 전혀 다른 그림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올랭피아는 관람객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눈을 피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림 앞에 선 사람은 멀리서 아름다운 여신을 감상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마치 그녀의 방을 찾아온 손님처럼 장면 안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올랭피아〉 부분 확대. 침대에 누운 올랭피아가 몸은 편하게 둔 채 눈을 정면으로 들어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부분 확대 · 올랭피아의 시선은 관람객을 피하지 않는다. 바로 이 직접적인 눈맞춤이 그림의 긴장을 만든다

마네는 티치아노의 비너스를 현대의 파리로 옮겼다

이 그림에는 유명한 선례가 있습니다. 티치아노가 1538년에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입니다. 누운 여성의 자세와 침대, 뒤쪽 공간의 구성이 서로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마네는 고전적인 비너스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그 안의 이야기를 당대 파리의 현실로 바꾸었습니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밝은 침대 위에 누운 여성이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고, 발치에는 작은 개가 잠들어 있으며 뒤쪽에는 두 여성이 보인다.
Tiziano Vecellio, Venus of Urbino, 1538 · Gallerie degli Uffizi

티치아노의 그림에서 여성의 발치에 얌전히 누워 있던 개 대신, 마네는 꼬리를 세운 검은 고양이를 놓았습니다. 하녀가 들고 들어온 꽃다발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보낸 선물처럼 읽힙니다. 관람객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비너스’의 구도는 그대로인데, 등장인물과 상황만 1860년대 파리로 바뀐 것입니다.

그림 속 올랭피아와 실제 모델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올랭피아의 모델은 빅토린 뫼랑(Victorine Meurent)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림 속 인물의 설정과 실제 모델의 삶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 속 올랭피아는 코르티잔으로 읽히지만, 뫼랑 자신이 매춘 여성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뫼랑은 마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한 전문 모델이었고, 훗날 자신도 화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파리 살롱에 출품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65년 관람객들에게 중요한 것은 모델 개인의 삶보다, 화면 속 여성이 너무 현실적인 동시대인처럼 보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고전적인 누드와 현실의 여성 사이에서 파리 살롱은 흔들렸다

1865년 살롱에서 〈올랭피아〉는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거친 붓질과 평평한 색면, 현실적인 여성의 모습과 직접적인 시선을 불편해했습니다. 반대로 에밀 졸라처럼 마네의 현대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파리 관람객들이 여성의 벗은 몸 자체를 처음 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신화 속 여신의 몸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자신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 같은 자세로 자신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마네는 고전 회화의 형식을 빌려 바로 그 불편한 경계를 드러냈습니다.

조롱받던 그림은 결국 프랑스 미술사의 중심에 들어갔다

마네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올랭피아〉는 한동안 그의 작업실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클로드 모네가 중심이 되어 작품을 구입하기 위한 모금이 진행되었고, 1890년 이 그림은 프랑스 국가에 기증되었습니다. 한때 파리 살롱에서 조롱과 비난을 받았던 작품을 국가가 보존해야 할 중요한 미술로 인정하도록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었습니다.

〈올랭피아〉는 이후 프랑스 국립 컬렉션에 들어갔고, 오늘날에는 오르세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1865년 관람객들이 불편해했던 현실적인 여성의 시선은 이제 근대 회화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읽힙니다.

이제 〈올랭피아〉를 다시 보세요.
그녀는 눈을 감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습니다.

파리 사람들을 가장 불편하게 만든 것은 벗은 몸보다, 자신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두 눈이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