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5월, 반 고흐는 생레미의 요양원을 나와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로 향했습니다. 동생 테오는 형을 돌봐 줄 의사로 폴 가셰 박사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반 고흐가 처음 만난 의사는 자신을 치료해 줄 사람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신만큼 지쳐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가 오히려 더 아파 보였다
가셰는 정신과 질환에 관심이 많았고 미술에도 깊이 빠져 있던 의사였습니다. 직접 그림과 판화를 만들었고, 피사로와 세잔을 비롯한 여러 화가들과 교류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의 생활과 고민을 이해할 수 있는 의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반 고흐의 첫인상은 복잡했습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가셰가 자신보다 더 아픈 것 같거나 적어도 자신만큼은 아파 보인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며칠 뒤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져, 가셰에게서 자신과 닮은 점이 많고 새로운 형제 같은 친구를 발견했다고 여동생에게 쓰기도 했습니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시작했지만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가셰는 반 고흐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하고 미술 이야기를 나눴고, 판화 도구도 빌려주었습니다. 반 고흐가 생애에 남긴 유일한 에칭 역시 가셰의 얼굴이었습니다.
반 고흐는 의사의 얼굴에서 ‘우리 시대의 슬픈 표정’을 보았다
6월, 반 고흐는 가셰의 초상화를 두 버전으로 그렸습니다. 그림 속 의사는 한 손으로 얼굴을 받친 채 몸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눈은 정면을 강하게 응시하기보다 어딘가 멀리 가라앉아 있고, 입가에는 힘이 없습니다. 의사의 초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지친 환자의 얼굴처럼 보입니다.
반 고흐는 초상화를 단순히 얼굴을 닮게 옮기는 작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처럼 똑같이 재현하기보다 색과 표정을 통해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더 강하게 드러내고 싶어 했습니다. 가셰의 창백한 얼굴, 짙은 파란 옷, 강한 파란 배경은 그런 생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붉은 탁자 위 디기탈리스는 의사라는 사실을 다시 알려 준다
우울한 초상 속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요소는 탁자 위의 보라색 디기탈리스입니다. 당시 약용으로 사용되던 식물로, 오르세 미술관은 이 꽃을 치료와 위안을 암시하는 요소로 설명합니다. 지친 얼굴과 차가운 색조 속에서도 이 인물이 여전히 환자를 돌보는 의사라는 사실을 조용히 남기는 셈입니다.
같은 사람을 그린 두 초상화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다
반 고흐는 가셰 박사의 초상화를 두 버전으로 남겼습니다.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그림은 가셰 박사가 직접 소장했던 제2버전입니다. 이후 그의 자녀 폴과 마르그리트 가셰가 1949년 프랑스 국가에 기증했고, 오늘날 오르세 미술관에 남아 있습니다.
반면 제1버전의 역사는 훨씬 파란만장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슈테델 미술관은 1910년대 초 이 작품을 소장했지만, 1937년 나치의 이른바 ‘퇴폐미술’ 몰수 과정에서 그림을 빼앗겼습니다. 작품은 이후 국제 미술시장으로 팔려 나갔고, 슈테델 미술관에는 빈 액자만 남았습니다.
세계 최고가를 기록한 뒤 다시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1990년 5월 15일, 제1버전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등장했습니다. 낙찰가는 8,250만 달러.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계적인 기록을 세운 뒤, 작품은 다시 공개 전시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슈테델 미술관은 이 그림의 행방과 역사를 추적하는 프로젝트의 제목을 아예 〈Finding Van Gogh〉라고 붙였습니다. 미술관에 남은 것은 한때 그림을 품고 있던 빈 액자뿐이고, 제1버전은 오늘날 개인 소장으로 알려져 있을 뿐 공개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반 고흐가 가셰를 만난 것은 세상을 떠나기 불과 두 달 전이었습니다. 오베르에 머문 짧은 기간 동안 그는 약 70점의 그림을 그릴 만큼 집중적으로 작업했고, 1890년 7월 2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셰는 그의 마지막 시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제 〈가셰 박사의 초상〉을 다시 보세요.
얼굴을 손에 기대고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은 반 고흐의 환자가 아니라 그의 의사였습니다.
하지만 반 고흐의 눈에는 이 의사 역시 자신만큼이나 깊은 슬픔을 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