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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TORY

이야기로 보는 명화 · 30

왕과 왕비는 그림의
깊숙한 곳에 있었다

왕실 가족을 그린 그림인데 정작 왕과 왕비는 화면 안에 없고, 방 뒤편의 작은 거울 속에만 등장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마드리드 왕궁의 방 안에 어린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와 시녀들, 궁정 사람들, 개가 서 있고, 화면 왼쪽에는 거대한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든 벨라스케스가 보인다. 방 뒤쪽의 작은 거울에는 국왕과 왕비의 모습이 비친다.
Diego Velázquez, Las Meninas, 1656 · Museo Nacional del Prado, Madrid

작품 정보

작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1599–1660)
작품명
〈시녀들〉 (Las Meninas)
제작연도
1656
재료
캔버스에 유채
크기
약 320.3 × 279.1 cm
소장처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Museo Nacional del Prado)

1656년 마드리드 왕궁의 한 방입니다. 화면 중앙에는 다섯 살의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가 서 있고, 양옆으로 시녀들과 궁정 사람들이 둘러서 있습니다. 처음에는 왕실의 일상을 우연히 포착한 그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화면 왼쪽과 방 가장 안쪽을 바라보는 순간, 이 장면은 훨씬 복잡해집니다.

왕실의 중심에는 공주와 시녀들, 그리고 화가 자신이 서 있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어린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가 있습니다. 양옆에는 공주를 돌보는 시녀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궁정에서 생활하던 마리 바르볼라와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가 보입니다. 니콜라시토는 바닥에 누운 큰 개를 발로 건드리고 있습니다.

뒤쪽에는 수행원들이 서 있고, 열린 문 너머 계단에는 왕비의 시종 호세 니에토가 보입니다. 그리고 화면 왼쪽에는 더 뜻밖의 인물이 있습니다. 거대한 캔버스 앞에서 붓과 팔레트를 든 벨라스케스 자신입니다.

〈시녀들〉 부분 확대. 화면 왼쪽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서서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으며, 그 앞에는 시녀와 공주가 보인다.
부분 확대 · 벨라스케스는 자신을 왕실 사람들과 같은 공간 안에 세웠지만, 정작 그가 그리고 있는 캔버스의 앞면은 보여 주지 않는다

우리는 거대한 캔버스의 뒷면만 볼 수 있다

벨라스케스 앞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캔버스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관람객에게 보이는 것은 그 뒷면뿐입니다. 화가가 누구를 그리고 있는지, 어떤 장면을 그리고 있는지는 화면에서 직접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는 오래전부터 같은 질문이 따라붙었습니다. 벨라스케스가 지금 그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답을 찾으려면 방의 가장 깊숙한 곳을 봐야 합니다.

왕과 왕비는 방 뒤편의 작은 거울 속에만 나타난다

벽 한가운데에는 작은 거울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그 안에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나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칩니다. 그림 안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두 사람은 오히려 화면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 셈입니다.

〈시녀들〉 부분 확대. 방 뒤쪽의 작은 거울 안에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나의 얼굴이 나란히 비쳐 있다.
부분 확대 · 왕과 왕비는 화면 깊숙한 곳의 작은 거울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이 거울 때문에 그림의 공간은 갑자기 관람객 쪽으로 열립니다. 왕과 왕비가 방 밖, 즉 우리가 서 있다고 느끼는 방향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면 공주의 시선과 시녀들의 반응, 벨라스케스가 바라보는 방향도 새롭게 읽힙니다. 그림 밖의 공간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순간입니다.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 가운데 하나는 벨라스케스가 왕과 왕비의 초상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방 뒤쪽 거울은 그 두 사람이 화가와 공주 앞에 서 있음을 암시하는 장치로 읽힙니다.

반면 거대한 캔버스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시녀들〉 자체를 떠올리게 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중요한 단서를 화면 곳곳에 놓았지만, 마지막 결론은 관람객에게 남겨 두었습니다.

처음부터 〈시녀들〉이라는 제목이었던 것도 아니다

오늘날 누구나 이 작품을 〈시녀들〉이라고 부르지만, 벨라스케스가 처음부터 이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닙니다. 왕궁의 오래된 재산 목록에서는 공주와 시녀, 궁정 사람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었고, 이후에는 〈펠리페 4세의 가족〉, 〈왕실 가족〉과 같은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현재의 제목인 〈Las Meninas〉는 훨씬 뒤에 정착했습니다. ‘메니나스’는 공주를 시중드는 젊은 궁정 시녀들을 뜻합니다. 그림 속에서 가장 권위 있는 왕과 왕비가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이름이 작품 제목이 된 것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왕궁은 사라졌지만 그 방을 그린 그림은 남았다

이 작품은 마드리드 알카사르 왕궁의 화재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그림 속 왕과 왕비, 공주, 화가가 함께 머물렀던 왕궁의 공간은 사라졌지만, 벨라스케스가 그린 한 장면은 남았습니다. 이후 왕실 컬렉션을 거쳐 오늘날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시녀들〉이 특별한 이유는 왕실 인물을 많이 그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화가는 그림 속 사람뿐 아니라 그림을 보는 사람의 위치까지 작품의 일부처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화면 밖에 서 있지만, 거울을 보는 순간 그 방 안의 시선들과 연결됩니다.

이제 〈시녀들〉을 다시 보세요.
왕과 왕비는 화면 중심이 아니라 방 가장 깊숙한 곳의 작은 거울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울은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의 자리까지 이 왕실의 방 안으로 끌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