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매장의 포장은 유난히 검습니다.
매끈한 검은 상자, 검은 쇼핑백, 금빛 글자가 찍힌 검은 카드.
값이 비쌀수록 포장은 점점 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같은 검정이 장례식장에서는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조문객의 검은 정장, 검은 넥타이, 검은 리본.
여기서 검정은 슬픔과 예의를 말합니다.
슬픔의 색이 어떻게 고급의 색이 되었을까요.
밤은 검고, 불에 탄 것도 검습니다.
고대 로마 사람들도 상을 당하면 어두운 색의 옷을 입었다고 전해집니다.
2화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동아시아의 상복은 흰색이었지만, 유럽의 상복은 오래전부터 검정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중세가 끝나 갈 무렵, 유럽에서 검정의 자리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뜻밖에도 그 까닭은 염색 기술에 있었습니다.
천을 검게 물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값싼 염료로 물들이면 금세 갈색이나 칙칙한 회색으로 바래 버렸습니다.
깊고 고른 검정을 오래 유지하려면 비싼 재료와 여러 번의 손질이 필요했습니다.
제대로 된 검은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5세기와 16세기 유럽에서는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이 검은 옷을 즐겨 입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색 대신 검정을 고르는 것이 오히려 품위 있고 진중한 사람의 표시가 되었습니다.
특히 스페인 궁정은 검은 옷으로 이름이 났습니다.
3화의 보라처럼, 검정도 값비싼 색이었기에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셈입니다.
우리 옛 그림 속 선비들도 검은 갓을 쓰고 있습니다.
가는 대나무 살과 말총으로 엮은 검은 갓은 공이 많이 드는 물건이었고, 선비의 품위를 상징했습니다.
오방색에서 검정은 북쪽과 물, 그리고 겨울을 맡은 색입니다.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깊어지는 색이라는 점에서, 동서양 모두 검정에서 비슷한 품위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19세기에는 검정이 슬픔의 색으로 한 번 더 깊어집니다.
1861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 앨버트 공을 잃었습니다.
여왕은 그 뒤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년 가까이 검은 옷을 입었습니다.
2화에서 흰 웨딩드레스로 신부의 색을 바꾼 바로 그 여왕입니다.
여왕을 따라 영국 사회에는 상중에 검은 옷을 입는 예법이 더욱 엄격해졌습니다.
같은 시기, 남자들의 정장도 검고 어두운 색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은행가도, 공무원도, 성직자도 검은 옷을 입었습니다.
검정은 진지함과 신뢰, 그리고 절제를 말하는 색이 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검정은 마지막으로 크게 한 번 더 자리를 옮깁니다.
1926년, 프랑스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단순한 검은 원피스를 내놓았습니다.
장식을 덜어 낸 짧은 검은 드레스였습니다.
당시 미국 보그는 이 옷을 누구나 탈 수 있는 자동차에 빗대어 '샤넬의 포드'라고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슬픔의 옷으로 여겨지던 검정이, 이제 가장 세련된 외출복이 된 것입니다.
그 '리틀 블랙 드레스'가 나온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검정은 한자리에 머문 적이 없습니다.
어둠과 죽음에서 시작해 귀족의 품위로, 다시 슬픔의 예법으로, 그리고 세련됨과 고급스러움으로 옮겨 다녔습니다.
2화에서 바르트의 '함축'을 이야기했습니다.
색 그 자체의 뜻 위에 사회와 시대가 덧입힌 뜻입니다.
검정의 역사는 함축이 한 번 정해지면 끝이 아니라, 시대를 따라 이사를 다닌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흥미로운 것은 앞의 뜻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검정은 지금도 장례식장에서는 슬픔을, 명품 매장에서는 고급을, 면접장에서는 진중함을 말합니다.
새 뜻이 들어올 때마다 옛 뜻은 밀려나지 않고 겹겹이 쌓입니다.
그래서 검정은 한 가지 색이면서, 가장 많은 말을 품은 색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색채 역사학자 미셸 파스투로는 색의 뜻은 자연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검정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도 검정 안에 고급이 들어 있어서가 아닙니다.
수백 년 동안 귀족이, 여왕이, 디자이너가 검정에 덧입혀 온 이야기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명품 매장의 검은 상자와 장례식장의 검은 정장은 서로 아무 관계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둘은 같은 색의 긴 역사 가운데, 서로 다른 시대의 한 장면씩을 나누어 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