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I COLOR TEST 오늘, 조금 더 나를 알아가는 시간

흰색은 왜 웨딩드레스이면서 상복일까

우리가 결혼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신부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걸어 들어오고, 하객들은 손뼉을 칩니다.

부고를 받고 찾아간 장례식장에는 영정 앞에 흰 국화가 놓여 있습니다.
조문객들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아낍니다.

가장 기쁜 자리에도, 가장 슬픈 자리에도 흰색이 있습니다.
같은 흰색이 한쪽에서는 축복이 되고, 다른 쪽에서는 애도가 됩니다.

결혼식과 장례식

흰색이 품은 뜻을 꼽아 보면 이렇습니다.
깨끗함, 순결, 새로 시작함.
죽음, 슬픔, 비어 있음.
그리고 하나 더, 항복.

우리에게 흰색은 오래 입어 온 색입니다.
옛사람들은 물들이지 않은 흰옷을 즐겨 입었고, 그래서 '백의민족'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조선의 임금들이 흰옷을 입지 말라는 명을 여러 차례 내렸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흰옷을 벗지 않았습니다.
흰옷은 그만큼 사람들의 몸에 익은 색이었습니다.
상을 당하면 흰 소복을 입었습니다.
꾸미지 않은 흰빛으로 슬픔을 드러냈습니다.

지금 장례식장에 가면 대부분 검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근대 이후 서양식 장례 문화가 들어오면서 상복의 색이 바뀐 것입니다.
슬픔은 그대로인데, 슬픔을 말하는 색이 바뀌었습니다.

흰옷으로 슬픔을 표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장례 때 흰옷을 입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흰색은 오래도록 떠난 사람을 보내는 색이었습니다.

초가집의 상주들

웨딩드레스가 흰색이 된 것도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840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결혼식에서 흰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그전까지 신부들은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었고, 색은 저마다 달랐습니다.
여왕의 결혼식 모습이 널리 퍼지면서, 신부는 흰 드레스를 입는다는 약속이 생겼습니다.

그때 흰 드레스에는 다른 뜻도 있었습니다.
흰 천은 금세 더러워지고, 한 번 입으면 다시 입기 어렵습니다.
그런 옷을 하루를 위해 마련할 수 있다는 것.
흰색은 순결의 색이기 전에, 넉넉함의 색이기도 했습니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우리 전통 혼례에서 신부는 흰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붉은 비단에 꽃과 새를 수놓은 활옷을 입었습니다.
지난 이야기의 그 빨강입니다.
흰옷은 슬픔의 자리에 있었으니, 기쁜 날에 입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신부들이 흰 드레스를 입는 것은 바다 건너온 약속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흰색은 또 다른 말을 합니다.
흰 깃발을 들면 싸움을 멈추겠다는 뜻입니다.
중국 후한 시대와 고대 로마의 기록에도 흰 깃발로 항복을 알린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아무 무늬도, 아무 색도 없는 천.
더는 내세울 것이 없다는 말이었을 겁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흰 가운을 입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세균과 위생이 의학의 중심이 되면서 흰 가운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금만 더러워져도 바로 드러나는 색.
그래서 흰색은 깨끗하다는 약속, 믿어도 된다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 생각을 살펴볼 만합니다.
바르트는 기호의 뜻을 두 층으로 나눠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뜻을 '외연', 그 위에 사회와 시대가 덧입힌 뜻을 '함축'이라고 불렀습니다.

흰색의 외연은 하나입니다.
아무 색도 섞이지 않은 밝은 빛.
그런데 함축은 자리마다 다릅니다.
드레스 위에서는 순결이, 소복 위에서는 슬픔이, 깃발 위에서는 항복이, 가운 위에서는 믿음이 얹힙니다.

함축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여왕 한 사람의 선택이 신부의 색을 바꾸었고, 바다를 건너온 문화가 상복의 색을 바꾸었습니다.
색은 그대로인데, 그 색에 얹히는 이야기가 시대를 따라 바뀝니다.

바르트의 생각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함축이 오래 되풀이되면, 사람들은 그것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여기게 된다고 했습니다.
만들어진 뜻이 자연스러운 뜻처럼 보이는 것, 바르트는 이것을 '신화'라고 불렀습니다.
신부의 흰 드레스는 겨우 180여 년 된 약속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흰 드레스를 보면, 아주 먼 옛날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순결을 떠올립니다.

축의금과 조의금 봉투

결혼식장 입구에서도, 장례식장 입구에서도 우리는 흰 봉투를 내밉니다.
겉으로는 똑같은 흰 봉투입니다.
하나에는 축하를, 하나에는 위로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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